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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빛

각자의 방

by snoow 2019. 4. 28.

2019. 4. 27.
어제는 오랜만에 발령 동기들이 모였다.
비가 부슬대는 가운데 아구찜집에 모였다.
매운 콩나물과 대구가 섞인 대구뽈찜을 먹었다.
우리는 세월만큼 나이가 들었고 주름이 늘었고 연륜도 쌓였다.
우리집으로 장소를 옮겨 다과를 나누었다.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해도 스트레스는 여전하다.
동기들 중 한 명을 빼고는 통통한 편인데 다들 단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스트레스를 달콤함의 위로로 풀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 열받는(?) 이야기들을 쏟아 놓으며 달달한 것을 먹으면서 회포를 풀었다.

열한시 반까지 이어진 담소로 귀가도 늦어지고 잠도 푹 자지는 못했다.
새벽에 깨어서는 셋째네로 갈 채비를 했다.
빵과 커피는 끊기로 하고서는 작심삼일을 증명하듯이 커피를 내려 남은 빵들을 먹었다.
하필이면 동기들은 양손 무겁게 빵을 들고 온 것이다.
페이스트리와 식빵은 s네에게 건네주었고, 아몬드러스크와 롤빵은 셋째네에 가져다주었다.
그래도 집에는 고구마카스텔라 두 조각이 남았다.
그나마 혼자서 먹는 것보다는 나누어 먹으니 살을 분산하는 효과도 있다.

'버스타고'앱에서 버스를 예약한 덕분에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출발할 수 있었다.
전에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가는 바람에 한참 기다려야 했는데 스마트폰 앱에 고마운 순간이었다.
버스는 손님들이 가득차서 출발시간보다 일찍 떠났다.
버스는 보통 쉬어가는 휴게소 직전의 휴게소에 정차를 했다.
알고 보니 뒷차 손님이 탔고, 이 버스를 예약한 손님이 타지 못한 것이었다.
버스가 한참을 달려 휴게소에 도착한 뒤에 검표를 하니 뒷차 손님이 앞차를 탄 것이 확인되었다.
앞차 손님은 터미널에서 난리가 났고 버스 기사님도 화가 나니 뒷차 손님을 나무랐다.
물론 기사님과 버스회사 직원이 검표만 신경썼다면 없었을 일이다.
혼자서 기사님과 뒷차 손님 중 누구의 잘못이 클까 생각했다.
우리는 익숙한 것과 반복되는 일들을 기계적으로 하고는 한다.
모든 사람이 예약 시간을 지켜 정해진 자리에 앉을거라는 암묵적인 약속이 꼼꼼히 살펴야 할 표의 시간과 좌석번호를 희미하게 만든다.
일을 하면서도 다시 살피지 않아 찜찜한 일들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잘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소하고 작은 일들부터 신경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셋째와 조카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정원'이라는 식당에서 만두전골을 시켜먹었다.
바지락이 가득 들어간 육수에 만두와 칼국수가 푸짐했다.
언제나 이 곳을 방문하면 손님이 많았는데 날씨가 좋은 주말이라 모두들 나들이를 간 모양이다.
늘찍한 식당에서 조카는 이리저리 탐색을 하며 다닌다.
조카가 얌전히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셋째는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조카는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연주를 너무 사랑한다.
아마도 조카의 마음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만두와 칼국수와 보리밥, 수북히 껍질이 쌓일 정도로 바지락을 먹고는 수저를 놓았다.

택시를 타고 시내와 조금 떨어진 아울렛으로 향했다.
유모차를 빌려 조카를 태우고는 옷구경에 나섰다.
레코브 매장에서  만원짜리 티를 셋째는 두 장, 나는 한 장을 샀다.
셋째는 나를 보자마자 청바지가 예쁘다며 어디서 샀냐는 질문이 계속되었다.
단추구멍에서 지난 해 구입한 밴드형 청바지였다.
날씬해보이고 핏이 좋다며 청바지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흰색 면티를 권하는 바람에 사고 말았다.
옷 구경, 그릇 구경을 하다가 결국에는 유니클로에서 진파랑과 연보라 레깅스와 조카의 주황색티를 샀다.
레깅스는 세 벌이나 있는데 평소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과소비를 한 셈이다.
구경이 끝나갈 무렵 레코브 매장에 다시 들려 셋째에게 청자켓을 사주었다.
얼마 전 생일이기도 했기에 생일 선물 삼아 사주었다.
양손이 무겁게 짐을 들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 셋째네에 돌아왔다.
쇼핑한다고 많이 걸었더니 출출해서 고구마, 치즈, 햄이 한꺼번에 든 핫도그를 먹었다.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3월보다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다.

부산으로 돌아오니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 지나있었다.
오랜만에 치킨을 먹고 싶었는데 고민하다가 주문하지 않았다.
핫도그를 먹기는 했지만 출출하기도 하여 밥과 반찬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치킨의 유혹에 넘어갈 뻔 했지만 간단히 저녁을 먹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모임과 먼 길을 다녀오는 바람에 피곤해서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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