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낙원다방의 밀크티

snoow 2018. 9. 15. 19:24

2018. 9. 15.
흐리고 비가 오는 주말이라 외출은 꺼려졌지만 집에만 있으면 가라앉을까봐 집을 나섰다.
게으르게 대충 청소를 하고 간단히 화장하고 가볍게 원피스를 입고 출발했다.

아름다운가게에 옷과 잡화 몇 점을 기부했다.
나에게 무용해서 기부를 하지만 누구의 쓸모도 되지 못할까봐 가끔은 기부가 꺼려지기도 한다.
오랜만에 온천천을 걸었고 모모스에 들러 스콘에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온천천을 걷다가 예전의 복개된 하천이 아니라 물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푸른 산책길로 탈바꿈한 모습이 좋다고 생각했다.
높이 치솟기만하는 아파트숲 사이에서 자연을 만끽하고자 하는 마음은 같다는것을 확인하면 다행이다 싶다.
도시화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고 시민들은 도시를 조금 더 살기 좋은 공간으로 바꾸려 한다는 믿음이 들어서다.
흐린 날씨지만 온천천 위로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예쁘더라.

멀리있는 j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육아로  힘들어했지만 목소리가 많이 밝아져 다행이었다.
j는 솔로인 내가 부럽다고 했고 나는 심심하다고 했다.
j의 말대로 자유로운 시간동안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h에게 문자를 했더니 얼마 전에 부서를 이동했단다.
함께 놀자던 둘째는 피곤하고 귀찮았는지 약속을 취소했다.
주말 오후는 혼자 여행하듯 망미동을 배회하기로 했다.

f1963에 들러 전시를 보았다.
조금은 의미있는 배회가 전시 관람이라도 되는듯 말이다.
대충 흘리듯 보아서 전시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겠다.
네모난 선 위를 벗어나지 않고 다양한 보법으로 걷는 영상을 보았다.
우선은 다양한 보법에 놀랐으나 정해진 선만 걷는 것이 답답해 보였다.
우리의 삶이 정해진 선 위에서만 구축된 듯 보여 답답했다.
붉은 사각의 선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파란 하늘과 구름, 흐린 하늘까지 사각 캔버스에 하늘을 그리고 일기처럼 노트를 남긴 작품도 보았다.
친구들과의 만남, 날씨 등을 소소하게 남긴 기록을 읽어내려 갔다.
그림보다는 글자에 눈이 더 간다.
누군가의 2010년의 하늘을 보았다.
오늘은 흐렸지만 파란 하늘이 보고 싶다.

중고서점에 들렀다.
보통은 구경만 하다가 오늘은 에세이 코너를 자세히 살폈다.
여행기를 좋아해서 여행 에세이 코너서 감성 가득한 책을 한 권 샀다.
감성이 필요할 때 꺼내 보아야겠다.

망미동 골목길을 헤매여 낙원다방에 도착했다.
습한 오후라 시원한 자리에서 아이스 밀크티를 마시며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를 계속 읽어 내려 갔다.
많이 걷고 보고 먹기도 했는데 주말 오후는 느리게만 흘렀다.
느리게 가는 시간이 고맙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했다.

두꺼운 책 두권과 남은 밀크티를 담은 텀블러까지 가방이 가득차서 어깨가 아파왔다.
다온에 들러 잡곡식빵을 사고는 주말의 배회를 마쳤다.
집에만 있었다면 몰랐을 기억들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