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빛

사랑해

snoow 2018. 4. 25. 21:32


2018. 4. 25.


그의 번호를 지우려다가 이름을 바꾸어 그대로 남겨두었다.

물망에 오른 것들은 물병자리, 꽃길, 물고기 등등 그러다가 그냥 '사랑해'라고 저장해버렸다.

며칠 사이, 만나도 시컨둥하고 인사도 제대로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은 것 같다.

퉁명스레 대하다가도 먼발치서 나혼자 그를 바라보면서 "좋다!"라고 탄성을 지른다.

왜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뻣뻣하게 굳고 제대로 인사도 못하는지...

나는 좋아해서 그렇다지만 그는 왜 나를 보면 뻣뻣해지고 어색해하는지...

우리는 도대체 마흔이 넘어서는 서툴게 서로를 대하는지 말이다.

해맑게 인사하는 '사랑합니다' 인사말에 '사랑해'라고 답할 수 있는데 그에게만은 내 사랑의 한 톨도 허락하지 않을까?

조금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i가 머무는 고서점에 들러 오랜만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왔다.

어제와 그제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다면 오늘은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 것 같다.

동물 심리 테스트를 보았는데 나는 비둘기다.

설명을 들을 때는 크게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따뜻한 오미자차와 기나긴 수다가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다.


수다 덕에 저녁이 늦어졌는데 집에 오는 길에 간만에 반찬가게에 들러 메추리알장조림, 생선전, 도라지무침을 사왔다.

배가 너무 고프다고 아주머니께 얘기했더니 반찬은 샀으니 밥만 있으면 되겠단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먼저 하고는 반찬가게 반찬으로 한 상을 차려 맛나게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bbc 채널을 보는데 알코올 이야기라는 주제의 다큐였다.

문제는 그 다큐의 진행자가 그와 너무 닮았다는 것이다.

얼굴이 까맣고 코가 높고 눈이 깊은... 달리 말하면 아랍계 느낌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나 아랍계 남자에게 끌리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는 나의 무의식을 자극하였나보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에 외모 때문인 것이다.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나는 외모지상주의자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이 환경오염처럼 지구를 파괴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좋아하련다.

지구는 파괴하지는 않겠지만 그의 마음은 불편하고 무겁게 할지는 모르겠다.

설령 내 마음을 안다한들 나와 그에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그를 생각하면 시무룩했던 마음도 봄눈 녹듯 녹으며 설레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