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
어제 오후에 먹은 커피 탓인지 새벽에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뭔스터를 함께 걷는 것이 좋아 책이랑 침대에 파묻혔다.
함께 뭔스터를 오래도록 걸어온 터라 책은 마지막 장을 향하는 참이었다.
그러다 책날개의 뒷쪽을 무심코 읽다가 '뮌스터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구절을 읽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인과 함께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이상 시인이 그 도시에서 살지 않다니 무슨 말인가?
처음에 그 구절을 읽고 독일의 낯선 도시를 뒤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시를 떠나왔다고 해도 좋을 것을 왜 생을 마감했다고 썼는지 의아해서 다시 읽었더니 글자 그대로 뮌스터를 영원히 떠난 것이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검색하니 시인의 부고가 여럿이었다.
위암 투병을 하다 가셨다는 소식을 읽고는 한 밤 울음을 왈칵 쏟았다.
마음에 드는 문투의 시인을 만났는데 시인이 떠나고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암투병을 하셨다니 감정이입이 되어서 내 생의 마감을 떠올려 버렸다.
시인이 오래 살았다는 뮌스터도 가야겠고 시인의 시와 책들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혼자 시인을 기억하겠다는 망각의 시대를 거스러는 안간힘을 내고 싶었다.
그러다 시인조차 아닌 나를 y는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y에게 시인도 작가도 아닌 나의 삶의 한토막을 건네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잊어도 그가 사는 동안 그의 존재와 함께 머물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벽의 훌쩍임을 뒤로 하고 겨우 잠들어 깬 아침은 미열이 가득했다.
수업, 문서작성, 회의로 이어진 낮을 보내었다.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는 것을 빼고는 온통 일투성이었다.
해의 시간은 저물고 저녁이 왔다.
쌀쌀했지만 저녁을 먹고는 지는 벚꽃에게 인사를 건네려고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중앙천로 벚꽃길로 향했다.
예전보다 일찍 핀 꽃은 지기 시작했다.
길 양쪽으로 벚꽃송이들은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부러 찾지 않는 동네 벚꽃길이다.
그마저 저녁이면 퇴근을 서두르는 행인을 빼고는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하다.
혼자서 산책을 즐기기에는 으슥한 구석이 묻어나는 길이다.
도시의 동맥과 같은 길이 아닌 모세혈관쯤 되는 길은 동네 사람들만 드문드문 다니는 길이다.
아마도 내가 사는 도시의 골목을 하나하나 누비며 걷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뮌스터를 걷는 시인처럼 이 도시를 걷지는 못할 것이다.
벚꽃길을 걸으며 시인이 걸었던 뮌스터를 떠올리고는 했다.
어둑한 길 위에 벚꽃은 새하얗게 길을 밝히고 있었다.
오래전 꿀배달을 하는 차를 타고 방문한 오래된 아파트를 보며 이 곳과의 오랜 인연을 떠올렸다.
자목련이 대문 한쪽에 서있는 오랜 주택이 멋지다 생각했다.
주택만 가득한 길 가운데 새로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에 보행자를 위한 출입구를 보고는 사람을 배려한 디자인이라 생각했다.
보통 아파트의 주출입구는 자동차가 주인공이고 보행자가 걸을 수 있는 길은 좁거나 아예 보도조차 찾아볼 수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출입구만큼이나 넓은 보행자통로가 마음에 들었다.
벚꽃길 주변은 한적한 주택가였지만 높다란 아파트가 가득한 우리 동네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안도했다.
어둑한 길이 위험하다고도 생각했을 수 있다.
곳곳에 아파트가 가득한 도시 풍경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말하지만 결국에 편리한 아파트에 더 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아파트가 하늘을 향해 솟는 것은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이었다.
집에서 보이는 아파트의 불빛을 저녁마다 별이 뜬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도 수많은 별이라 생각하고 바라본다.
어쩌면 이 도시를 싫어하는 만큼 사랑하고 있음이다.
일상의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