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8.
지난 토요일 아무런 답이 없는 그로부터 도망다녔다.
괜히 쑥스럽기도 하고 거절당한 기분이기도 하고 무시당한 것 같아서 피해다녔다.
물론 그에게 사정이 있었겠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거나, 다른 일이 있어 답을 못했거나, 미처 답을 하려 했을 때는 시간이 너무 흘렀거나...
그렇지만 나혼자서 뿔이 나서는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알려주기로 한 수정사항을 오후 늦게서야 보내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실내의 공기를 무릅쓰고 창문과 문을 꽁꽁 닫아두었다.
혹시나 지나가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거나 그의 얼굴을 보게 될까봐 철저히 그를 차단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를 만날 날이었는지 서류작성으로 그가 나를 찾아왔다.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서류만 바라보며 서명을 했다.
서명을 하는데 장부의 페이지를 꼭 잡고 펼쳐지지 않게 눌러주었다.
'제가 할게요!'
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인데...
글씨 쓸 때 종이를 잡을 수 있고, 나 혼자서 차 문을 열 수도 있고, 쓰레기통 뚜껑 따위 안 잡아 주어도 되고, 매트도 나를 힘이 있는데...
그가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은 그냥 편하게 웃어주고, 인사말을 건네고, 문자에 답을 해주고, 다정한 말을 해주는 건데...
그가 해줄 수 있는 일과 내가 그에게 바라는 일은 너무 격차가 크다.
그렇게 짧은 순간, 그를 마주쳤지만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다.
어차피 오늘은 철저히 외면하고 싶었던 날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가 잠시 머물다가 간 탓에 내 마음은 또 일렁거렸다.
도대체 그는 무슨 도술을 쓰길래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정한 기일이 다가오니 그때까지는 사랑이든 미련이든 증오든 마음껏 쏟아내자.
이러나 저러나 나혼자서 갈팡질팡대는 감정이니 티는 조금 덜 내야겠다.
컨디션이 안좋아 오전 내도록 힘들었지만 조퇴를 하지 않고 오후까지 잘 견디어냈다.
강의를 두 강 정도 들었고, 연어를 구워 저녁을 챙겨 먹었고, 피곤하니 책을 읽다가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