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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

오롯이 혼자

by snoow 2019. 10. 14.

2019. 10. 13.
느지막하게 일어나 요가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숨을 쉬는것조차 힘들었는데 호흡이 많이 편해졌다.
불편한 근육과 힘줄도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다.

청경채와 양파를 넣은 어묵탕을 데워 밥을 먹었다.
간장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한 어묵탕이 짠게 조금 흠이지만 맛났다.

주말 청소를 시작했다.
먼지를 털고 닦아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가구들을 제자리에 놓는다.
마지막은 화장실 청소다.
세면기를 닦고 변기도 닦고 락스로 바닥도 닦고 하수구의 머리카락들도 제거한다.
청소를 마치면 공기도 산뜻해지고 기분도 고와진다.
귀찮기만 한 청소지만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읽었다.
그의 마지막 두 해가 소롯이 남아 있는 글들은 그의 말대로 그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타인을 향한 사랑이었다.
나도 그처럼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날마다 말하고 싶다.

오랜만에 된장국을 끓였다.
점심은 데친 브로콜리, 노란 파프리카, 구운 김, 된장국이다.
나름 삼첩밥상인데 맛은 뛰어나지 않지만 소박하고 배부르다.
s와 함께 카레를 해먹을까 하다가 연락이 없어 혼자 먹은 점심이지만 든든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길 위의 인생》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정치적이지 않은 한 사람으로 페미니스트의 글을 읽는 것이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의 하는 일이 정치와 맞닿아 있고 그와 나눈 이야기들이 있어 예전과는 달리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오후에는 너무 졸리워서 그대로 있으면 잠들어 버릴 것 같아 움직이기로 했다.
장전동의 책방과 빵집, 춤을 추기로 결정하고 길을 나섰다.
브런치카페숲에서 달달한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면서 오후의 독서를 이어갔다.
무화과와 청포도로 장식된 토스트가 먹음직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아스트로북스에 들러 이반일리치의 책과 마리아쿤체의 시집을 샀다.
사장님이 책방 행사를 소개해주어 금요일에 가볼까 한다.
복수가게에 들러 스콘을 두 개만 살까 하다가 네 개를 샀다.
두 개는 내가 먹고 두 개는 s네 부부에게 주기로 했다.
스윙바가 열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온천천을 걷기도 했다.
혼자서 오롯이 보내는 시간들이다.
나 혼자서도 잘 보낼 수 있는데 그에게 너무 부담을 준 것이 아닌가 하고 후회가 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도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테니 고요히 기다려주고 싶다.

오랜만에 춤을 추었다.
리더님의 리딩에 따라 나의 춤사위는 바뀐다.
현란한 동작이 없더라도 음악에 맞춰 자연스레 춘 춤이 언제나 좋다.
춤을 출 때마다 상대와 호흡을 맞추려 노력한다.
그와 나는 어떤 춤을 추고 있을까?
그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뒷걸음치려고 할 때가 많다.
그렇게 의기소침한 그를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 하루를 보내었다.
하루종일 그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혼자 보내었지만 늘 그를 생각한 나는 안부문자를 보내었다.
내가 할 수 있는만큼의 사랑을 보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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